본문바로가기 주요메뉴바로가기

공지사항

이전으로

[문화일보] 서효석원장의 His Story - '편도선염 자주 앓다 한의사로 …'

2015. 06. 04

▲ 서효석 편강한의원 대표원장이 지난 5월 27일 서울 서초본원 앞 공원에서
'건강 100세'를 목표로 하는  편강도원(扁康桃源) 건립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편강탕' 돌풍 서효석 한의원장

 

제주도의 한 마을에 90세 넘은 노인 33명이 화초를 기르며 평화롭게 지낸다. 노인들은 감기에 걸리지 않고 신선과 같은 모습으로 여유가 넘친다. 이 마을의 이름은 반노환중촌(返老還中村). 노년을 반납하고 중년으로 돌아온다는 곳이다. 이른바 중국 신화에서 알려진 무릉도원(武陵桃源)의 모습이다.

무협지에서나 볼 듯한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비염·천식·아토피 치료 한약인 '편강탕'을 개발 해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서효석(70) 편강한의원 원장이 실제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서 원장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신빙성을 가늠하기 위해 그가 현재 펼치고 있는 활동을 살펴봤다. 그가 만든 '편강탕'은 국내 한약 수출 1호를 기록하면서 전 세계 30여 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그가 세운 편강한의원은 서울 서초구 본점을 비롯해 안산·명동·산본·부천 등 국내는 물론 미국 로스앤젤레스(LA)·애틀랜타·휴스턴·샌프란시스코, 일본 오사카(大阪) 등 세계 곳곳에 위치해 있다.

지난 5월 27일 서초구 본점에서 서 원장을 만나 '편강'의 뜻부터 물었다.


-편강이라는 단어에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어떻게 개발됐는지도 많은 사람이 궁금해합니다.


"편도선할 때 편(扁)에 편안할 강(康)입니다. 원래는 '편안한 마음에 건강한 몸'이라는 의미의 편강(便康)이었는데 편도와 폐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려 편강(扁康)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편강을 강조한 것은 사연이 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적부터 편도선이 약해 편도선염을 자주 앓았습니다. 그때마다 한번 열이 나기 시작하면 보통 40도까지 올라갔어요. 목은 부을 대로 부어서 음식물을 삼키지 못할 정도였고, 고열이 나니까 오한이 와서 한여름에도 겨울옷을 꺼내서 입기도 했습니다. 온갖 노력을 했는데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진정이 되곤 했습니다. 그러기를 1년에 4~5차례씩 반복했죠. 문제는 나중에 한의사가 된 뒤였습니다. 한의원을 개원하고 나서 편도선염이 오면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는데 신상카드의 직업란에 한의사라고 쓰기가 창피했습니다. 그때 내가 이것도 못 고치면서 큰 병 고치는 한의사라고 말할수 있을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고쳐봐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죠. 그래서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각종 서적을 찾아가며 온갖 약초들을 배합해 사용해 봤습니다. 그렇게 약을 달이고 또 달이기를 2년에 걸쳐 진행해 편강탕을 완성했습니다."


- 편도선염을 고치기 위해서 한의사의 길로 들어선 건가요.


"(웃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의학을 전공한 것은 부친이 강력하고 간곡하게 권유를 해서였습니다. 저는 사실 무역학과를 가고 싶어 했습니다. 부친은 평생 큰 서적상을 하셨는데 한의학 관련 서적을 50권 이상 정독하실 정도로 우리 전통의학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부친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무릎을 다쳤던 적이 있었습니다. 부친과 외과의사에게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의사는 제 양쪽 무릎을 다 수술하자고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픈 쪽은 수술해야 하지만, 안 아픈 쪽도 아플 수 있으니 수술하는 차에 같이 하자는 말이었습니다. 부친이 오랫동안 심사숙고했는데 결국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그 뒤에 제 무릎은 멀쩡해졌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선택이 옳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 수술을 했다면 불구가 됐을 수도 있으니까요."


-한의사가 된 이후에도 바로 편강탕이 알려지지는 않았더군요.


"처음에는 다른 한의사처럼 보약을 많이 지었습니다. 또 저는 경동시장 근처에서 한의원을 운영했는데 잘돼서 서초동으로 진출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만났습니다. 제가 직원 1명을 두고 있었는데 월급 대기조차 어려웠고,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폐원하니 다시 쉽게 개원할 용기가 나지 않았죠. 한 5~6개월을 쉬다가 경기 군포 남천한방병원 원장으로 취직했습니다.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한의사로서 설렁설렁 지내던 시절을 접고 정말 열심히 진료했습니다. 1년이 채 되기 전에 다시 개원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요. 개원을 생각하면서 제가 가진 한약 처방을 특화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여러 가지 처방 중에 최종적으로 낙점한 것이 편강탕입니다. 그때 생각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편도선 환자들은 많지 않았는데 그전까지는 편도선이 아프다고 해야만 처방을 썼던 거죠. 그러던 것을 편도선염이 열 감기이니 편강탕으로 감기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감기 예방을 위해 처방하면서 편강탕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 편강탕은 비염과 천식에 더 유명하던데요.


"편강탕은 폐를 깨끗하게 해줍니다. 폐가 가장 심각한 환자는 진폐증 환자죠. 제가 산재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안산중앙병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는데 병원에 입원했던 진폐증 환자들에게서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진폐증 환자들은 기력이 없어 평상시 누워서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1년 정도 지나면서 휴게실에서 게임을 하는 환자들이 생겨난 겁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편강탕을 먹은 환자들이었습니다. 폐가 건강해져 기력이 회복되면서 게임을 하게 된 것이죠. 병원장도 놀랐습니다. 결국 병원장의 가족들도 나중에는 편강탕을 먹게 됐습니다."


그는 1999년의 경험을 들려줬다.


"어느 날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 비염으로 찾아왔는데 순간적으로 편강탕을 처방했습니다. 한의학 국가고시에 나오는 비염 처방인 소청룡탕이 별다른 효과가 없으니 감기와 비슷한 비염 증상에 편강탕을 사용해볼 생각을 한 것이죠. 사흘 뒤에 학생 아버지가 아침 일찍 찾아왔습니다. 딸아이가 하루에 두루마리 화장지 1개를 사용했는데 휴지 5장 이하로 줄었다는 것이었다. 치과의사인 보인도 비염을 앓고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유명하다는 의료기관을 다 찾아다녔지만 포기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염에 처방하기 시작했고, 많은 비염 환자가 찾아오면서 그중에 천식과 아토피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 확신했습니다. 비염과 천식은 뿌리가 같은 병으로 모두 폐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요."

이때부터 그는 '비염과 천식은 뿌리가 같은 병으로 모두 폐에 그 원인이 있다'는 문구를 카피로 활용해 신문과 방송 등에 대대적으로 광고하며 적극적으로 알렸다.


- 편강탕은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던데요.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미국 스탠튼대 한의대에서 현지 한의사들의 보수교육을 제게 요청했습니다. 보통 이틀간 교육을 하는데 제가 강의를 끝내고 바로 그 자리에서 제 책 2만5000부를 팔았습니다. 그것을 본 총장이 강의가 끝나자 제게 LA의 중심 상가에 지을 병원 부지를 보여주면서 편강한의원의 독점권을 요청했습니다. 그때 LA에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그 뒤에 케이팝(K-POP)이 유행하던 2012년에 뉴욕에서 10만여 명이 참석하는 추석맞이 한인 음악회가 크게 열렸다.

"제가 연설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연설이 제가 해외 진출을 확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 연설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한류의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데 한류의 다음은 한의학입니다. 드라마 '대장금'이 보여준 한의학의 비전은 실제로 한의사들이 세계인이 고치지 못하는 병을 고쳐서 한국을 빛내는 것이 진정한 한류의 다음입니다. 비염, 아토피, 천식은 전 세계에서 불치병으로 알고 있지만 고쳐낼 수 있습니다. 영어로 마무리한 연설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Can You Cure Asma. Yes You Can, Can You Cure Allergy. Yes You Can. Only Korea.'"

그의 마지막 문장은 큰 화제를 모았다. 사회자가 다시 반복했고 한국인은 물론 서양 사람들도 따라 외쳤다. 이후 행사를 취재했던 중국인 방송기자가 찾아와 서효석 원장 특집 제작을 요청했고, 그렇게 제작된 방송프로그램은 중국에서 크게 성공하면서 52부작으로 확대 제작돼 전파를 탔다. 서 원장의 방송프로그램 제목은 '신의재현(神醫再現)'. 이후 중국에서는 서 원장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 중국에서의 인기를 어느 정도 실감하는지요.


"중국에는 태의(太醫·황제를 진료하는 어의)가 82명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한의사가 2만 명이면 모두 동등한 위치인데, 중국은 태의에게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것이죠. 태의들이 어느 날 제가 나온 프로그램을 보고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한의학은 중의학이 반도로 뻗어 나간 가지에 불과한데 그 한의학이 서의(서양의학)를 호령하는 데 반해, 중의학은 오히려 서의에 당하고 있다며 한의가 부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의 권위지 뉴욕타임스(NYT)에 전 세계 의사와 제약회사에 부작용이 많은 스테로이드를 퇴출해야 한다는 광고를 내기도 하면서 큰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중국의 무릉도원을 제주도에 '편강도원'이라는 이름으로 재현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아 제주도까지 온 서복을 기념해 만든 서복전시관 옆에 12채 기와집을 세워 반노환중촌을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33명의 90세 노인을 모셔놓고 편강의술로 감기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백수를 영위하는 모습을 관광객들이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도록 꾸민다는 게 서 원장의 생각이다. 그에게 편강도원을 세우는 궁극적인 목표를 물었더니 이러한 답이 돌아왔다.

"전  세계인의 건강입니다. 전 세계인의 건강수명을 30년 늘릴 수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폐 건강을 통해서 충분히 가능합니다. 인간이 최후가 되면 폐에 구멍이 나고, 가래가 차고, 굳어 버리는 세 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95세가 되면 망가지는 것도 이것인 거죠. 편강탕으로 폐를 건강히 하게 되면 생명 연장은 꿈이 아닙니다. 이처럼 건강 100세를 열어가는 것이 편강의 생각입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빠른상담신청하기